한국 선거사상 20대 젊은층과 60대 이상 노년층의 투표성향이 이처럼 일치한 것은
아마 처음일 것이다. 반면 20대 여성(1829세)은 박영선 44%, 오세훈 40.9%로 여전히 민주당에 더 많은 지지를 보냈다. 또래 남녀가 정치적 선호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이는 경우는 흔하지만 이처럼 정치성향이 확연히 갈린 것도 드문 일이었다.
이제 20대는 투표율도 다른 연령층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는다.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연령별 투표율(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료)을 보면 20대 17.5%, 30대 17.3%, 40대 18.1%, 50대 18.3%, 60대 14.9%, 70대 8.2%였다. 큰 차이가 없다.
1년 전인 2020년 4월 21대 총선에서는 20대 58.7%, 30대 57.1%, 40대 63.5%, 50대 71.2%, 60대 80%의 투표율을 보였다. 젊은층 투표 참여 운동이 활발했던 2000년 16대 총선과 비교해 보자.2000년 총선 투표율은 20대 36.8%, 30대 50.6%, 40대 66.8%, 50대 77.6%,
60대 이상 75.2%였다. 20대와 50대의 투표율이 2배 이상 차이가 났다. 그때와 비교하면 다른 연령대에 비해 20대의 투표율이 크게 올랐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물론 고령화 추세에 따라 20~30대 선거 인원보다 50~60대 선거 인원이 훨씬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투표율이 높아지고 정당 쏠림 현상이 뚜렷해졌다는 것은 그만큼 선거에서 이들의 향방이 중요해졌음을 의미한다. 2022년 3월 20대 대선을 앞두고 20대 남녀의 정치적 선택이 핵심 변수로 떠오른 것은 이 같은 변화와 무관치 않다.너희에겐 희망이 없다 그러면 20대는 보수화했을까?
젊었을 때 좌파가 아닌 사람은 없고 나이가 들어도 좌파는 없다는 말처럼 젊으니까 진보적일 수밖에 없다는 명제는 무의미해진 것일까? 20대 정치성향의 극적 변화를 보여주는 지표가 최근 시사IN 여론조사다. ‘시사IN’은 2021년 9월 창간 14주년 여론조사에서 20대에게 ‘가장 신뢰하는 전직 대통령’이 누구인지 물었다.
1위는 20대 남녀 모두 노무현 대통령이었다. 노무현은 2013년을 제외하고 한 번도 1위를 놓친 적이 없다(이 해는 2012년 12월 대선에서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된 이듬해다. 2013년에는 박정희가 딸의 후광을 받아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대통령 1위에 올랐다.
놀라운 것은 2위였다. 20대 남성으로는 구속된 이명박 대통령이 박정희 김대중 대통령을 제치고 ‘가장 신뢰하는 전직 대통령’ 2위에 올랐다. 지지율은 27.7%로 노무현(30.4%)와 큰 차이가 없다. 20대 여성이 가장 신뢰받는 대통령 1, 2위로 각각 노무현(45.7%)와 김대중(22.3%)를 꼽은 것과는
확연히 다른 결과다. 전 연령층에서는 1위 노무현(36%), 2위 박정희(26.3%), 3위 김대중(16.1%), 4위 이명박(5.0%), 5위 김영삼(2.5%) 순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실망으로 박정희를 지지하지 않는 20대 남성들이 그 대안으로 이명박을 선택했다고 밖에 해석할 수 없다.
그만큼 20대 남성의 보수 선호는 강력하다는 뜻으로 읽힌다. 또 20대 여성의 진보 선호도 흔들리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20대가 보수화했다는 또 다른 사례는 공정과 정의의 문제에 민감한 이 세대가 사안에 따라서는
선택적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는 점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 스펙 쌓기에 대해서는 서울대·고려대 등에서 촛불집회까지 열어 강도 높게 비판했지만 곽상도 전 국회의원 아들의 퇴직금 50억원 수령에 대해서는 대학가에서 비판의 목소리가 그리 크지 않았다는 게 단적인 사례다.
이를 두고 20대가 그토록 비판한 진영 논리에 스스로 빠져 진보의 내로남불은 맹비난하고 보수의 위선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조중동을 비롯한 보수언론이 보수정치인의 잘못에는 침묵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는 것이다.
20대 보수화론이 나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시사평론가 김용민의 ‘너희에겐 희망이 없다’는 대학 학보 기고로 본격적으로 논란이 불붙었다. 이명박 집권 시절인 2009년 그 반동의 시기에 김영민은 20대 대학생들이 1980년대 대학생들과는 달리 모든 사안을
가치보다 내 유리에 방점을 두고 사리 판별을 하겠다면서 지금 너희 자리에 1980년대 군부독재권력에 온몸으로 저항했던 386 선배들이 있었다면 그것으로 권력의 골칫거리가 됐다면 과연 이명박은 지금처럼 담담한 태도를 보였을까라고 비판했다.이후 ’20대 견자론’이 온라인에서 화제가 됐다. 김영민이 20대를 ‘개 새끼’라고 부른 것은 아니다. ‘개 새끼론’이라는 명명은 20대가 기성세대의 지적에 역공을 펼치기 위해 스스로 붙인 일종의 풍자적 표현이었다. 2019년에는 민주당 설훈 의원이 20대부터 민주당 지지율이 하락한 원인을 ‘그들이 학교 교육을 받았을 때가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이었다. 제대로 된 교육이 됐을까 생각한다고 말해 거센 논란을 일으켰다. 교육이 잘못됐다거나 역사의식이 없다는 진보진영의 생각이 설훈 의원의 발언에는 스며 있었다.그러나 젊은 세대에 대한 비판과 비하가 진보의 전유물은 아니다.진보의 ‘늙은이’ 때문에 20대가 보수화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뜻이다. 인근에서는 2021년 국민의힘 대선후보 경선 때 윤석열 후보를 지지했던 주호영 의원이 이런 말을 하며 사과한 바 있다. 윤석열 후보의 청년층 지지율이 낮은 이유를 묻는 라디오 앵커의 질문에 주호영 의원은”20~30대는 정치인들의 그 이전 여러 가지를 잘 기억하지 못하고 지금 조만간 뉴스에서 접할 것을 갖고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요즘 젊은이들은 역사를 모른다는 인식에서는 진보나 보수나 기성세대의 사고방식에는 큰 차이가 없는 것이다. 『조선일보』2011년 11월 10일에는 ‘2040세대 84%가 10가지 괴담 중 하나 이상 믿는다’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인터넷과 트위터에 떠도는 정치·사회 관련 괴담에 젊은 층이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기사였다. 그때 제시된 괴담은 2008년 광우병 촛불집회에 참가한 여대생이 경찰에 목이 졸려 사망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에리카 김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아이를 낳았다 등 주로 보수정권에 불리한 것이었다.”싫어하는 정파에 대한 불신이 워낙 크다 보니 믿고 싶은 쪽 얘기에만 쏠리는 현상”이라고 해석했다.이를 솔직하게 표현하면 젊은 층은 엉뚱한 괴담에 쉽게 기울수록 분위기에 휘말려 정치적 판단력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이처럼 비판과 비하의 대상이 된 20대가보수정치세력과 보수언론의 각광을 받기 시작한 것은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민주당 지지를 철회하고 분명히 국민의힘에 지지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괴담에 쏠린다는 평가를 받았던 20대는 이제 공정과 정의 열망이 충만한 세대라는 찬사를 보수언론으로부터 받고 있다.20대의 정치성향에 대한 평가가 얼마나 자의적이고 변화무쌍한지 보여주는 사례다.출처_ (저서) 진보를 찾다